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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람베를 위한 정의
 trakl  | 2016·06·02 00:47 | HIT : 180 | VOTE : 36 |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745978.html

http://www.vox.com/2016/5/31/11813640/harambe-gorilla-cincinnati-zoo-kil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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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쿳시가 고기공장을 나치의 시체공장과 다를 것이 없다는 투로 얘기하자 격분하고 나선 유태인들이 있었다. 사람과 동물은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과 '사람 아닌' 동물은 다르다. 그리고 같기도 하다. 부정당하면 고통을 당하는 본성을 지닌 생명체, 그것도 일부의 경우는 당할 수 있는 고통의 폭과 깊이가 아주 넓고 깊은 생명체라는 점에서는 같다.  



고릴라가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것도 사람 잘못, 고릴라를 잡아가둔 것도 사람 잘못, 어린 아이가 쉽게 넘어갈 수 있게 담장을 만든 것도 사람 잘못, 어린 아이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도 사람 잘못이다. 온통 사람 잘못인데 그 대가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동물이 목숨으로 치른다. 하람베를 죽이는 것이 불가피했다면 이 몰합리의 인식도 불가피해야 한다.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이란 표현은 통상 흉악하다. 그런 사건을 다시는 안 일어나게 하는데 도움되는 조치나 그런 사건이 일어난데 책임있는 이들에 대한 처벌이 전혀 암시되지 않는 글에 끼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 엄마도 동물원도 형식적인 유감 표명이 전부다. 자신들의 부주의와 실수에 대한 진솔한 인정이라고 할만한 어떤 표현이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이 엄마의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에 서명한 이들이 30만이 넘어가는 한편 아이 엄마를 지지하는 모임의 좋아요 회수는 300이 넘지 않는다. 아이를 엄마로부터 떼어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아이 엄마와 이름이 비슷한 이가 곤욕을 치렀다. 둘의 페이스북 페이지가 삭제되었다. 극단적인 이들은 늘 있지만 이들의 숫자를 늘린 것은 누구인가?



어떤 인터넷 언론은 이들을 인터넷 폭도로 몰아간다. 다른 동물들에게도 인간들에게도, 더 비극적인 사건들이 줄지어 일어나고 있는데 이 사건에만 관심을 쏟는다고 비난한다. 우발적인 실수에 불과한 것에 대해서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질타한다.  



일부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고릴라에게서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비뚤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정말로 환멸스러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것으로 느껴지는 동물들에게서 위안을 찾는다. 그 위안 자체에 잘못된 것은 없다. 인간들을 갈라세우는 자본주의 문명은 동물들, 특히 반려기질이 있는 동물들에 대한 애착을 불가피하게 한다.  



고기공장이나 동물실험에는 신경쓰지 않고 고릴라 한 마리의 우발적인 죽음에 대해 신경쓰는 것도 그리 잘못은 아니다. 셋 다에 신경쓰지 않는 것보다는 하나만이라도 신경쓰는 것이 낫다. 일부 사람들이 사람들 사이에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비극보다는 하람비의 죽음에 더 민감하다면, 그것은 사람 편을 드는데 지쳤기 때문, 사람편은 충분히 있기 때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들의 고통에는 대변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 아닌 생물들이 인간 때문에 당하는 고통과 인간들이 서로 주고 받는 고통은 상당한 정도로 엮여 있다. 인간 아닌 생물들을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의미가 있는 도구와 재료로만 보는 관점은 인간을 가능한 한 쉽게 대체되어야 하는 노동력의 담지자로만 보는 관점과 엮여 있다. 인간중심주의에서 조금이라도 더 벗어나려고 애쓰는 사회는 그만큼 더 인간적이 된다.



새로운 사회가 소중히 품어야 하는 모토는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인간들의 지성의 상당 부분이 인간이 다른 생물들에게 가하는 살상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는데 투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제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루는 이들이 가장 큰 명예와 존경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덜 죽이고 덜 고통스럽게 하고 인간적 물질적 삶의 질을 확보하는 것은 기술이 자본축적을 위해서만 동원된다면 불가능하겠지만 기술의 개념 자체에는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어떤 것도 없다.



여러분 자신 속의 불성을 들여다보시라. 중생들은 다 행복하라는 부처님 말씀이 마음속에 눌러 붙어 있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 말고는 없다. 마음만 먹는다면 사람은 개미 한마리의 존재가 자신의 포르쉐의 존재보다 무한히 더 가치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그 느낌을 계속 유지하면 언젠가는 개미 한 마리를 살리기위해 포르쉐를 포기할 수도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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