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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햄 어린이 성학대: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슬라보예 지젝)
 trakl  | 2015·03·21 18:58 | HIT : 278 | VOTE : 34 |
Rotherham child sex abuse: it is our duty to ask difficult questions (By Slavoj Zizek)
로터햄 어린이 성학대: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슬라보예 지젝)

해방을 위해 투쟁하고자하는 어느 누구도 종교와 문화를 검토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출처: 가디언 / 2014년 9월 1일

http://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4/sep/01/rotherham-child-sex-abuse-difficult-questions


* 번역: 정성철 cittaa@gmail.com
  


로터햄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윤곽은 현재 다소간 분명하다: 1997년에서 2013년 사이 적어도 1,400명의 어린이들이 잔인한 성학대를 당했다; 11살 밖에 안 된 어린이들이 다수의 범죄자들에 의해 강간당하고 유괴당하고 다른 도시들로 인신매매당하고 구타당하고 협박당했다. 범죄자들은 (거의 전적으로) 파키스탄 이민자들이었는데, 그들의 희생자들은 종종 백인 여학생들이었다.
  

반응은 예측할 수 있었다. 좌파는 대개 일반화들을 통해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의 최악을내보였다: 범죄자들은 모호하게 “아시아인들”로 지칭되었고 문제인 것은 출신민족과 종교가 아니라 남성들의 여성 지배라는 주장이 행해졌다. 거기에 우리 교회의 어린이 성애 이력과 지미 사비유 사건을 두고 볼 때 우리가 어떻게 고통당하는 처지에 있는 소수민족에게높은 도덕적 기준을 들이댈 수 있느냐는 주장이 덧붙여졌다 ... 누가 유키프, 그리고 보통 사람들의 근심거리들을 이용해 먹는 다른 반이민 민중주의자들에게 전장을 개방하는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도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러한 반인종주의는, 오만불손하게 파키스탄인들을 우리의 기준들을 들이대서는 안 되는 도덕적으로 열등한 존재들로 대하는 것이니, 실질적으로는 거의 노골적인 인종주의이다.

  
사회생활의 서로 다른 수준들의 비동시대성의 끔찍한 효과들 중 하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증대이다 - 단순히 무작위적인 폭력이 아닌, 체계적인 폭력, 어떤 사회적 맥락에 고유한그 폭력은 하나의 패턴을 보여주며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 키우다드 후아레즈에서 일어난 여성 연쇄 살인은 단순히 사적인 병리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의 의례화된 활동, 지역 갱들의 하위문화의 일부이며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 미혼 여성을 표적으로 했다. 독립적인 여성 노동자들이라는 새로운 계급에 대한 마초적 반응의 명백한 사례인 것이다.

  
밴쿠버 주변의 보호 거주지들에서 멀지 않은 캐나다 서부에서는 원주민 여성들이 연쇄적으로 강간당하고 살해당했다. 하나의 모범이라는, 관용적인 복지국가라는 캐나다의 자처는 그로 인해 무색해 졌다: 일단의 백인 남성들이 한 여성을 납치, 강간, 살해하고는 절단된사체를 보호 거주지 구역에 놓아두었는데, 이로 인해서 법적으로 그 범죄는 그러한 부류의 사건들을 다룰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원주민 경찰의 관할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것들은 모두 급속한 산업화와 현대화에 기인한 사회적 탈구가 이 발전을 위협으로 경험하는 남성들로부터 야수적인 반응을 촉발한 사례들이다. 이 모든 사건들의 결정적 특징은 그 폭력 행위가 문명화된 관습들의 사슬을 끊는 야수적 에너지의 자생적 폭발이 아니라 배워진,외부에서 부과된, 의례화된 어떤 것, 한 공동체의 집단적 상징적 실체의 일부라는 것이다.
  

동일한 도착적인 사회-의례적 논리가 잇달아 가톨릭 교회를 뒤흔드는 어린이 성애 사건들에서 작동하고 있다: 교회 대표자들이 이 사건들은 비록 개탄스럽지만 교회 내부의 문제라는 것을 역설하고 그것들을 조사하는데 경찰과 협력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모습을 내보일 때, 그들은 어느 면에서는 옳다 - 가톨릭 사제들의 어린이 성애는 어쩌다가 사제직을 선택하게 된 사람들하고만 관계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톨릭 교회 자체와 관계있는, 하나의 사회-상징적 제도로서의 그것의 바로 그 기능 속에 각인되어 있는 현상이다. 그것은 개인들의 “사적인” 무의식이 아니라 제도 자체의 “무의식”과 관계 있다: 그것은 그 제도가 존속하기 위해 리비도적 삶의 병리적 현실에 순응해야만 하기 때문에 일어난 어떤 것이 아니라 그 제도 자체가 그 자신을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어떤 것이다.

  
달리 말하면, 교회가 단순히 체제순응주의적인 이유들로 당혹스러운 어린이 성애 추문들을 쉬쉬하려드는 것은 아니다. 그 자신을 방어하면서, 교회는 그것의 가장 내밀한 외설적 비밀을 방어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자신을 이 비밀과 동일시하는 것이 기독교 사제라는 것의 바로 그 정체성의 한 주요 성분이라는 것이다: 어느 사제가 진지하게 (수사적으로만이 아니라) 이 추문들을 비난한다면, 그는 그럼으로써 그 자신을 성직자 공동체로부터 배제하며 그는 더 이상 “우리들 중의 한명”이 아니다.
  

우리는 로터햄 사건들에 정확히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파키스탄 무슬림 청년들의 “정치적 무의식”을 대하고 있다 - 무질서한 폭력이 아니라 명확한 이데올로기적 윤곽을 지닌 하나의 의례화된 폭력을 대하고 있다: 지배 집단의 취약한 여성들에게 복수하는, 그 자신을 주변화되고 예속되어 있는 존재로 경험하는 청년들의 집단. 따라서 그들의 종교와 문화에 여성에 대한 잔인한 행동의 공간을 열어주는 특징들이 있는지 여부를 질문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당하다.

(그 자체로 볼 때 기독교보다 더 여성차별적이지는 않은) 이슬람 그 자체를 탓하지 않고서도 우리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많은 무슬림 나라들과 공동체들에서 볼 수 있는 여성의 예속 및 공적 생활로부터의 여성의 배제와 어울린다는 것을, 그리고 근본주의적이라고 지칭되는 많은 집단들과 운동들 사이에서 위계적인 성차의 엄격한 부과가 그들의 의사일정의 최상위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질문들을 제기하는 것은 은밀하게 인종주의적이거나 이슬람혐오적이지 않다. 그것은 해방을 위해 싸우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윤리-정치적 의무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들의 이 모든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10 년 여 전 우세문화 논쟁에서 보수주의자들은 모든 국가는 동일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타 문화 성원들이 존중해야 하는 하나의 우세한 문화공간에 토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한 선언들에 의해 고지되는 새로운 유럽 인종주의의 출현을 개탄하는 대신, 우리는 어느 정도나 우리 자신의 추상적 다문화주의가 이 유감스러운 사태에 기여했는지를 질문하면서 우리 자신에게 비판적 눈길을 돌려야 한다. 모든 편들이 동일한 시민정신을 공유하거나 존중하지 않는다면, 다문화주의는 법적으로 규제되는 상호 무지나 증오의 한 형태로 전락한다.

  
다문화주의를 둘러싼 갈등은 이미 우세문화를 둘러싼 갈등이다: 그것은 문화들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어떻게 서로 다른 문화들이 공존할 수 있고 공존해야만 하느냐에 대한, 공존하려면 이 문화들이 공유해야 하는 규칙들과 관행들에 대한 서로 다른 비전들 사이의 갈등이다. 따라서 우리는 “타자에게 얼마나 많은 관용을 베풀 수 있는가”라는 자유주의적 게임에 빠져드는 것을 피해야 한다. 이 [게임] 수준에서라면, 물론, 우리는 결코 충분히 관용적이지 않거나 우리는 이미 너무 관용적이다. 이 막다른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모든 참여자들에 의해 공유되는 적극적인 보편적 기획을 제안하고 그 기획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해방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결정적 과제가 타자들에 대한 한갓된 존중을 넘어서 유일하게 서로 다른 문화들의 진정한 공존과 융합을 지탱할 수 있는 하나의 적극적인우세문화를 향해 나아가는 것인 이유이다. 우리의 공리는 서구 신식민주의에 맞선 투쟁, 근본주의에 맞선 투쟁, 위키리크스와 에드워드 스노우든의 투쟁, 푸지 라이어트의 투쟁, 공격적 시오니즘에 맞선 투쟁, 반유태주의에 맞선 투쟁 - 이 모든 투쟁들이 하나이자 같은 보편적 투쟁의 부분들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어떤 타협을 한다면, 우리가 실용주의적인 타협에 빠진다면, 우리의 삶은 살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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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터햄 어린이 성폭력 사건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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