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새로운 공간 - 크리티카

  

 



<크리티카> 2호를 내며: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커뮤니티를 향하여
비평정신이 살아있는 비평 전문지, 비평적 관심과 학문적 관심을 생산적으로 결합한 비평 전문지이기를 자임하고 첫 호를 낸지 벌써 1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진작 독자들과 만났어야 할 원고들이 출판사를 찾지 못해 표류한 탓에 두 번째 호의 발간이 많이 늦어졌다. 출판시장의 각박함을 새삼 실감하게 된 터라 '돈 안 될' 책을 기꺼이 떠안아준 <사피엔스21> 출판사에 대한 고마움은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잘 팔릴' 글을 만들 신통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아직은 그럴 뜻마저도 없으니, 『크리티카』의 발간이 당분간은 출판사에게 '출혈사업'이 될 게 뻔해 보인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로서는 한층 더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 원고로 내실 있는 책을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는 다짐을 되새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이번 호의 내용이 출간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린 만큼이나 알찬 지는 독자 여러분들이 판단할 일이겠으나 다채로운 읽을거리로 구성된 것만은 분명하다. 분량이나 문체, 탐구 영역 따위의 다양함이야 어떤 잡지에서든 볼 수 있는 일이겠지만, '관점'의 상이함, 글의 배면에 깔린 '신조'의 상이함까지 포괄하는 다채로움을 한 잡지에서, 그것도 '동인지'를 표방하는 잡지에서 볼 경우는 드물지 않을까 싶다. 이미 첫 호에서도 이런 모양새를 얼마간 비쳤던 터라 '동인지'로서의 『크리티카』의 정체가 무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기존의 동인지들을 잣대로 삼고 보면 『크리티카』는 도무지 동인지로서의 '동일성'을 찾기가 난감한,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뒤섞여 있는 읽을거리로 비치기 십상이다. 첫 호를 긍정적으로 읽어주신 어떤 분이 "탈근대적 연대"라는 근사한 규정을 주신 것도 도무지 한데 맺히는 구석을 찾기 힘든 모임의 '집단성'을 규정하기 위한 고육지책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싶다.

그런데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모여 화음을 이루는 '집단'을 상상해볼 수는 없을까. 물론 '서로 다른 목소리들'은 현재 우리의 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정치적, 미학적 대안을 주창할 힘이 없을 뿐더러 또 그렇게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정도의 '뜨거움'은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미지근한' 상태에 그대로 주저앉기를 용납할 만큼 '차갑게' 된 것도 아닌 사람들의 모임, 그래도 함께하면 뭔가 조금이나마 뜻 깊은 것을 생산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기에 그 출발점은 '서로 다른 목소리들'로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목소리들이 같이 벼리어나가는 과정에서 각자 깊어지고 높아지면서 또 서로 배어들어 어울리는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굳이 '동인회'라는 집단의 형태를 취한 것이기도 할 터이니, 지금 우리의 정체성을 찾자면 이러한 생각, 이러한 믿음을 공유한다는 데에서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비평정신'이라는 '근대적' 가치 기준이 함께 나아갈 길을 밝히는 일종의 이정표로서 주어져 있다. 하지만 그 길이 구체적으로 어떤 수준에서 어떤 모양새로 만들어질지는 앞으로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한층 더 분발이 요구되지만, 지금 현재 이대로의 모습만으로도 큰 불만은 없다. 연구비 명목의 '돈'과 직위나 취업의 조건으로서의 '실적'에 의해 유인되고 강제되는 공부와 글쓰기가 지배하는 풍토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난 공간에서, 비록 삶의 한 부분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이긴 하지만 같이 공부하고 토론하며 진지한 호기심과 모색을 자극하는 동무들이 아직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해야 할 일이다.

물론 이러한 태도만으로는 총체적으로 요동치고 있는 세상에서 길을 찾고 만들기에는 너무 안일할뿐더러 또 너무 편한 것 같지만, 서두르지 않되 서로 발길을 도와 꾸준히 가다보면 어느새 같이 걸을 길이 생길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런 믿음에 부합하는 노력을 동인들과 같이 나누고 싶다.

지금까지는 동인의 한 사람으로서 동인회인 '크리티카'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적어본 것이다. 동인 전체를 '대표'하는 글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의 자기이해(Selbstverstaendigung)를 위한 글인 셈이다. 여기에 이번 호의 내용 소개를 간단히 덧붙임으로써 격식에 맞지 않는 머리말을 대신하고자 한다.

이번 호는 지난 호와 마찬가지로 크게 비평과 이론 두 부분으로 나누어 글을 싣되 번역난을 추가하였다. 우리말로 옮겨 소개할 만하다 싶은 글을 골라 앞으로도 계속 실을 예정인데, 이번에는 청년 루카치의 실존적 고뇌와 문제의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글로 평가되는 [마음의 가난에 관하여-대화와 편지]를 소개한다.

비평 부분은, 디킨즈의 『막대한 유산』과의 교차독서를 통해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드러나는 '회귀'의 구조와 '프로'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 『팬클럽』이 제시하는 '삼미의 철학'이 '프로'의 시대에 하나의 대안으로서 가지는 한계와 중요성을 짚어본 황정아 동인의 글, 문학(사)적 의의에 비해 평단이나 독자들의 주목 정도가 덜한 오수연의 작품세계를 포괄적으로 다루면서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평가한 박상준 동인의 글, 반복과 문학, 문학과 반복의 관계를 '독창성', '생산과 재생산' 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고찰한 윤혜준 동인의 글, 리얼리즘 동화론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리얼리즘 동화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황선미의 작품을 분석한 김성진 동인의 글, 일제시대 민족문학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태준과 임화 사이에 이루어진 지적 협력의 과정을 추적한 신승엽 동인의 글로 구성해보았다.

이론 부분은, 한국의 문학-문화 담론 장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가라타니 고진의 사유세계를 비판적으로 조명한 오길영 동인의 글, 다수 환경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에 보내는 회의의 입장을 날카롭게 논박하는 정성철 동인의 글, 불교철학의 기본원리인 오온(五蘊), 연기론(緣起論), 공(空)사상을 근간으로 근대 서양문학을 읽어내려 시도한 이경덕 동인의 글, 그리고 이번 호의 유일한 청탁 원고인 김상환 선생의 글로 꾸며보았다. 김상환 선생의 원고는 데리다의 해체론을 철학사 방법론으로 읽을 수 있다는 관점에서 해체론의 기본적 특성과 독창성을 밝히려 시도하는 한편, 해체론에서 영감을 받은 철학사 방법론이 한국 사상사의 창조적 재구성 작업에 기여할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글이다. 흔쾌히 청탁에 응해주신 데 대한 고마움뿐만 아니라 옥고를 받은 지 반년이 넘어서야 세상에 내놓게 된 데 대한 미안함까지 이 자리를 빌려 전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상업성이 별로 없는 비평지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새로이 출판을 맡아주신 <사피엔스21> 출판사 권일경 대표의 호의에, 그리고 우리의 원고를 산뜻한 책으로 만들어주신 편집부 직원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2007년 2월  김경식 씀.


[크리티카 No. 2] 목차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커뮤니티를 향하여"

비평

01 ‘프로’의 시대를 거스르기
- 박민규의『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찰스 디킨즈의 『막대한 유산』
02 폭력에 맞서는 문학의 길을 찾아서 - 오수연의 소설 세계
03 길 잃은 리얼리즘 동화를 위하여 - 황선미의 동화 두 편을 중심으로
04 반복과 문학, 문학과 반복 - 조건에 대한 명상
05 김태준과 임화 - 민족문학론을 준비한 두 사람의 지적 협력

이론

01 근대와 근대문학의 ‘자명성’을 의심하기 - 가라타니 고진 읽기
02 불교 철학과 근대문학
03 해체론과 철학사
04 환경운동과 마르크스주의

번역

'마음의 가난에 관하여'를 읽기 전에
01 게오르크 폰 루카치 '마음의 가난에 관하여-대화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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