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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가 놀라운 것
 bloom    | 2015·10·19 10:40 | HIT : 228 | VOTE : 35 |
방금 이런 기사를 읽었다.
 
"사회 관계 지원'(2014년) 항목에서 한국은 OECD 34개국 가운데 꼴찌를 차지했다.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나 친척이 있는지와 관련한 점수에서 한국은 72.37점을 기록해 OECD(88.02점) 평균에 크게 못 미친 것은 물론 회원국 중 최저였다. 특히 한국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5∼29세의 점수는 93.29점으로 OECD 평균(93.16점)보다도 높았지만 30∼49세(78.38점)에서 점수가 급격하게 낮아졌다. 50세 이상의 점수는 67.58점으로 1위인 아일랜드(96.34점)보다 무려 30점 가량 낮았다."
 
세상이 각박해진다. 사람관계의 토대가 무너진다. 이제는 '우정'이라는 말도 그 울림이 다르다. 아니, 어쩌면 이 말도 이제는 사라져가는 단어가 아닐까. '헬조선'이 되어가는 한 징후다.
 
우정에 대해 김현이 쓴 글이다. [행복한 책읽기]에 실렸다. 이 글을 다시 읽으니, 이 가을날에 친구들과 산에 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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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 있는 게 아니라, 가끔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한 작가는 꼬집듯 말하고 있다. 사람의 이기적인 면을 잘 꼬집는 말이지만,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정이니 뭐니하는 거창한 말은 빼더라도, 언제 만나도 편안하고 마음 놓이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구란 아무 말 없이 오래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같이 있는 것은 불편해서, 괜히 담배를 피우거나, 해도 괜찮고 안 해도 괜찮은 말을 계속 해야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냥 곁에 있는 것만으로 편안해져서, 구태여 의례적인 말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같이 아무 말 않고 오래 앉아 있으면 불편해지는 사람을 친구라 부르기는 거북하다. 친구란 아내 비슷하게 서로 곁에 있는 것을 확인만 해도 편해지는 사람이다. 같이 있을 만하다는 것은 어려운 삶 속에서 같이 살아갈만하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그런 친구들이 많은 사람은 행복할 것 같다.
 
내 곁에도 그런 친구들이 서넛 있는데, 그런 친구들의 고마움을 새삼 느낀 뜻깊은 경험을 지금 나는 하고 있다. 내 친구 중의 하나는 신촌에 있는 여자대학교의 선생(김치수:문학평론가)인데, 얼굴이 시커멓고 몽고추장이라는 괴상한 별명을 갖고 있다. 내가 술병으로 한 일년을 고생하는 것을 옆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지켜보던 그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전화를 걸더니 관악산에 등산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뒤를 따라나섰는데, 서울대학교 4·19탑 뒷길을 한 10여분 걸어가다가 도저히 못 가겠다고 내가 멈춰서자 그는 나를 한 일분 물끄러미 들여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앞장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한 한 달 뒤 그가 다시 전화를 걸어 이번에는 청계산을 가보자고 하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다시 그의 뒤를 따라나섰고, 부끄러워라, 무려 다섯번이나 쉬면서, 지친 노새처럼 헉헉대고 청계산 제 1 야영지까지 올라갔다. 그는 내가 쉴 때마다 옆에 앉아 5월의 신록이나 산세의 아름다움, 맑은 하늘을 예찬하곤 하였다. 그 다음 주일에도 그가 전화를 걸어 청계산엘 갔는데 이번에는 세 번 쉬고 올라갔고, 그 다음 주일에는 한 두 시간쯤 걷게 되자, 다른 산 구경을 하자면서, 그는 나를 북한산으로 데려갔다. 이제는 다섯, 여섯 시간 정도는 산길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몸이 튼튼해졌지만, 오 분만 쉬지 않고 걸어도 구식 증기기관차 같아지는 내 숨소리를, 참고 듣고, 이런 험한 길로 나를 데려온 놈이 어떤 놈이냐는 호령 소리를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다 받고서 그냥 빙긋 웃어버리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일요일마다 산행을 하면서 그와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내가 숨이 가빠서 그런 것이지만, 숨이 별로 가쁘지 않은 요즘에도 그러하다. 우리는 아침 7시에 만나 별말 없이 산길을 걷는다. 그가 쉬자고 하면, 어느 틈엔지 숨이 목까지 차 있다. 그는 참외나 사과·배를 꺼내 깎아 반쪽을 나에게 준다. 그는 어린애 달래듯, 이젠 잘 걷는데 라고 말한다. 거의 매번 되풀이되는 칭찬이다. 어린애 달래듯, 혹시 내가 이젠 못하겠다고 하고 나자빠질까봐 하는 소리다. 육개월을 넘기니까, 이제는 식욕도 좋아지고, 겁나는 일이지만, 다시 술 맛도 난다. "내가 자네 때문에 술병이 거의 나은 것 같네"라고 말하면 "내년 가을에는 설악산에 데려다줄게"라고 대답한다. 알랑방귀뀌지 말라는 말일 게다. 그는 매주일 나를 데리고 산엘 가는데, 이제는 그 친구가 갑자기 "인제부터는 혼자 다니게"라고 말하지나 않을까 겁난다. 그래서 이런 자리를 빌어 "그런 나쁜 짓을 하면 못쓰네"하고 그를 타이르고 있는 중이다.
 
우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그 작가는, 바다가 놀라운 것은 거기에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친구가 놀라운 것은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과연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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