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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간주의의 의미: 영화 [기생수]와 [어벤저스2]
 bloom    | 2015·05·16 03:14 | HIT : 246 | VOTE : 41 |



1. 문학의 역할은 여러가지다. 그중 하나는 인류가 만들어낸 어떤 발명품보다 탁월하게 문학은 간접적으로나마 외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객관화의 경험을 하게 한다. 문학이 살아남은 이유다.  내 기억이 맞다면 소설가 로런스(D.H. Lawrence)는 소설이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까지 말했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역할에서 문학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는 뜻이리라.  인간은 단 한순간도 자신의 외부에 설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인식과 취향과 감성과 세계관의 창문을 통해서만 세계를 본다.  우리시대의 창문인 sns나 페이스북도 마찬가지다. 페북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는 이유? 나와 다르게 세계를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과 감성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남들의 글을 찾아 읽을 이유가 없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재차  확인할 필요가 왜 있는가.  

그러므로 적어도 인간적 앎의 영역(물리적 영역과는 다른)에서 미리 주어진 객관성은 없다. 수많은 주관성들의 관계만이 있다.(벤야민이 말한 성좌constellation 비유가 떠오른다) 스스로 보편적, 객관적 위치에 있다고 믿는 이들의 말을 믿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대개 그런 이들은 (자기만 모르는) 독단주의에 사로 잡혀 있다. 뛰어난 작품을 읽으면서 독자는  작품의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통해 입체적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운다.  하나의 주관성을 지닌 독자로서 ‘내’가 본 것에 대해, 나의 주관성, 나의 세계인식에 대해  되풀이해서 성찰하는 경험을 쌓게된다. 그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것의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문학이 가르치는 겸손함이다. 뻔뻔함이 지배하는 우리시대에 여전히 문학이 필요한 이유다.

2. 좋은 문학은 이렇게 인간 관계의 맥락에서 잠시나마 다른 이의 입장이 되어보고, 다른 이의 시각에서 주어진 사태를 조망하는 시야를 알려준다. 뛰어난 소설의 힘은 섣불리 작가가 자신의 견해를 내세우는게 아니라(설명과 주장),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들로 형상화된 작중 캐릭터의 상호점검을 통해(묘사와 제시), 각 인물의 인식과 태도의 문제점을 점검한다. 그런 점검의 과정에 독자가 참여할 때 독자의 인식도 성장한다. 하지만 이런 문학의 역할에도 한계는 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탐색하는 문학은 여전히 인간주의의 한계에 갇혀 있다. 인간 외부의 시각,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관점에서 인간을 상대화하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세계와 우주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각은 전통적인 문학에서 쉽게 얻지 못한다. 일반 문학에서 작가도, 독자도 인간이기에 우리는 언제나 인간의 시각에서만  세계를 바라본다.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이나 과학영화의 매력은 인간외부의 시각에서 인간을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역할에서 나온다.  뛰어난 과학소설/영화가 대개 반인간주의 혹은 비인간주의의 시각을 견지하는 이유다. 그 뜻은 인간을 미워한다는 게 아니다. 나쁜 의미의 인간중심주의, 휴머니즘에 대한 비판이다. '너희 인간들이 그렇게 잘났어?' 라는 질문.

3. 지난 몇년간 학부수업에서 과학소설과 영화를 갖고 강의해 왔다. 그러면서 느낀 것 중 하나. 위에 적은 과학소설의 반인간주의도 중요한 강의의 주제지만, 다른 것도 있다. 소위  '문학적/예술적 상상력과 과학적 상상력의 관계'에 대한 고민. 우리시대의 예술적 상상력은 과학적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20세기 영화와 과학은 예술적 상상력과 과학적 상상력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발전해 왔다. 20세기의 인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인문학도 과학적 혹은 기술적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현대과학기술을 모르면서 우리시대의 '인간'과 '세계'를 논할 수 없다.(예컨대 네트워크 시대 글쓰기와 읽기의 변화양상)   문학은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인간과 세계를 논해서는 안된다. 인간과 세계를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구체적 상황의 구체적 분석'(레닌)이라는 말이 가장 필요한 곳이 문학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제대로 상상하려면, 누군가의 표현대로 "코끼리의 뼈"라는 현실적 토대 위에서 해야한다. 문학은 어떤 이들의 오해와는 달리 뜬구름 잡기가 아니다. 문학적 상상(imagination)은 공상(fancy)이 아니다. "현실적 토대"를 사유하는 것이 과학적 상상력이다. 그것이 있어야만 예술적 상상력도 가능하다.  

4. 좋은 과학소설은 그점에서 탁월하게 반인간주의적이다.  예컨대 [매트릭스]에서 피력되는, 인간전사들을 추적하는 프로그램인 스미스 요원이 던지는 인간에 대한 통렬한 비판.

"내가 여기 있는 동안 한가지 연구한 게 있지. 너희 종을 분류하면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지. 인간은 순수한 포유류가 아니다.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는 본능적으로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데 너희 인간들은 그렇지 않다.  너희들은 한 지역에서 번식을 하고, 모든 자연 자원을 소모해 버리고는 생존을 위해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지구상에 너희와 똑같은 패턴으로 움직이는 유기체가 있다. 그게 뭔지 알고 있나? 바로 바이러스지. 인간은 질병이야. 지구의 암이란거야. 너희 인간들은 전염병이고. 우리는 치료제란 거지."

이런 반인간주의에 대해 영화의 '인간전사'들은 아무런 응답을 안하고, 혹은 못하고 넘어가지만,  이 대사를 듣는 관객들의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냥 '나쁜 놈'이 하는 말로 치부할 수 없다. 좋은 과학소설과 영화는 그런 불편함과 낯설게 하기를 통해 우리에게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 인간들이 지닌 오만함과 철저한 자기중심주의와 이기성과 추악함에 대해. 인간보다 힘이 없는, 약한 생명체들을 짓밟는 인간들의 폭력과 잔인함에 대해.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한국사회의 수많은 '갑질'에 대해.(나도 지금 그런 어이없는 '갑질'을 겪고 있다)    

5. 그만큼 충격적인 반인간주의적 표현을 몇년전 읽은 만화 [기생수]에서 발견했다.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인간의 수가 절반으로 준다면 얼마나 많은 숲이 살아남을까.'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인간이 100분의 1로 준다면 쏟아내는 독도 100분의 1이 될까.' 누군가 문득 생각했다.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나는 이 만화의 그림체나 잔인함, 조금은 엉성한 스토리 전개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도입부에 나오는 이 표현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쉬운 것은 이 주제의식을 힘있게 밀고나가지 못하고, 이야기가 인간 대 기생수의 싸움으로 흘러가 버린 점이다. 최근 이 만화가 실사영화로 만들어졌다. 나는 그중  [기생수 1]을 봤다. 2편도 곧 개봉한단다. 나름 재미있지만, 역시 원작의 아쉬움을 넘지 못한다. 이때 원작을 탓해서는 곤란하다. 만화 [공각기동대]를 각색한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는 원작의 한계들을 뛰어넘으며, 선명한 주제로 가다듬은 걸작으로 탄생했다. 원작을 재해석, 각색하는 감독의 역량이다.  

6. 어제 집의 아이와 함께 오랜만에 여기 극장을 찾아 본 [어벤저스2]의 아쉬움도 이와 관련된다.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은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그 물량에 압도되어 길을 잃은 느낌이다.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지만, '적'으로 상정된 울트론의 반인간주의를 그냥 지나가는 얘기처럼 치부해버리고, 줄곧 싸움장면에 힘을 쏟고 있다.(언제부턴가 도시 하나 정도는 파괴해야 되는게 이쪽 영화의 공식이 된 인상이다) 그 결과 '코믹스 영웅'들은 아무런 입체감이 없는 얄팍한(나쁜 의미에서 만화적) 캐릭터로 그려진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졸았다고 하던데 그 마음이 이해된다. 같이 영화를 본 아이의 견해도 다르지 않다. 이 영화를 'SF'의 범주에 넣는게 적당한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헐리웃 영화가 더욱 '볼거리'로 기울고 있다는 인상이다. 나는 소위 '예술영화' 예찬자도 아니지만, 그 점이 아쉽다. 같은 코믹스 영화라도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는 다르지 않은가. 하긴, 좋은 작품은 언제나 드문 법.

7. 좋은 SF 영화에서 표현되는 반인간주의에 끌리는 내 정서에는 아마도 (나를 포함한) 우리시대 사람들이 보여주는 추하고 찌질한, 철저한 이기주의에 기반한 약육강식과 생존의 본능만이 득세하는 모습에 대한 환멸도 작용한다. 어떤 일대 전환의 계기가 필요하다는 느낌을 자꾸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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