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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함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 -위화의 <제7일>에 부쳐
 literae    | 2015·03·23 21:34 | HIT : 296 | VOTE : 34 |
  위화의 새 장편소설 <제7일>은 ‘죽었지만 매장되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이다. 불교 식으로 말하자면 중음신(中陰身)들을 다룬 것이지만, 가난도 없고 부유함도 없으며 슬픔도 고통도, 원수도 원망도 없이 전부 죽은 사람들이 평등하게 지내는 곳에 머무르겠다는 바람으로 끝을 맺는 데서 보이듯, 이 소설이 지향하는 곳은 내세가 아니다. 21세기 중국의 잡다한 현실을 비판하되 어떠한 소망도 제기하지 않으면서, 유려한 문체에 의해 조성되는 서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현실에서 유린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의 주된 효과는 정조(情操)에 있으며, 그 바탕은 몇몇 중심인물들 사이의 실로 인간적인 관계이다. 주인공 양페이와 그를 거두어 길러 준 헌신적인 아버지 양진뱌오 사이의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그 핵을 이루고, 그들 부자와 하오창성 아저씨네 가족의 이웃애, 헤어지기 전의 양페이와 리칭의 관계가 주변을 아우르며, 죽었으되 매장되지 못한 자들이 그들의 땅에서 슈메이를 씻겨 염을 해 주고 무덤으로 보내는 일이 후광을 더해 준다. 서술시점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죽은 상태로 움직이기에 현실적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평온을 얻었다는 점(이는 작가의 의도적인 설정에 따른 효과이다)과, 그러한 평온을 그려내는 문체의 서정성이 아름다운 인간관계의 정조를 한층 강화해 준다.

  물론 이것으로 다는 아니다. 안개와도 같은 서정적인 기운이 드러내 주는 것은, 서민들의 신산한 삶의 적나라한 폭로이고, 온갖 부조리가 행해지는 세태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다. 집을 철거당하면서 영문도 모르게 사람이 죽고, 쇼핑센터의 화재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도 은폐되며, 병원에서 영아들이 폐기(!)되어도 문제시하지 않는 범죄 등이 버젓이 자행되고 은폐, 축소, 호도되는 사회상이 도처에서 폭로된다. 이렇게 작품 속에서 폭로되는 사건들은 신문 사회면을 수놓는 것들의 전용에 가까워서 그 자체만으로는 깊이 있는 울림을 주기 어렵지만, 사회의 문제적인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 주는 상황들과 맞물리면서 의미가 한층 강화된다. 가난에 몰려 쥐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나, 돈을 벌고자 몸을 팔겠다며 남자친구와 싸우는 여인, 애인의 요구에 짝퉁 핸드폰을 선물(해야)하는 세태, 돈을 벌기 위해 사랑하는 남편과 헤어지는 일 등 아직 어떠한 사건으로 불거진 것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사회라면 지양되어야 할 상황들이 그것이다.

  정리하자면, 급속한 자본주의화에 따른 혹은 그저 현대화에 따른 사회의 여러 문제 상황을 보여주고, 그 위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어이없는 사건, 사고들에 희생된 자들을 내세운 뒤, 그렇게 죽었으되 돈이 없어 땅에 묻히지도 못하는 그들에게 그들 죽은 자들만의 평등한 땅을 제시하는 것, 이 모든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담담하게 풀어낸 것이 <제7일>의 작품 세계이다.

  이러한 <제7일>의 작품 효과를 특징짓는 기본적인 장치는 등장인물들이 죽은 자들이라는 설정이다. 인물들이 죽은 후, 한편으로는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현실의 문제들이 폭로되고 한편으로는 그들 죽었으되 매장되지 못한 자들만의 공동체적인 관계가 그려짐으로써, 이 작품 특유의 서정적인 효과가 마련되는 것이다. 양페이가 주인공임에는 틀림없지만 전체 서사가 주요 등장인물 각각의 내력을 밝혀 주는 스토리-선들에 의해 교차되는 일종의 옴니버스 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 것도, 문체에 의해 한층 강화된 서정적인 효과를 해치지 않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점은 다른 경우 곧 등장인물들이 죽지 않고 이야기가 진행될 경우,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한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경우를 상상해 보면 금방 명확해진다. 인물들이 죽기 전의 상태라면, 현실에서 고통 받되 나름대로 희망도 있고 바람도 있어서 그만큼의 불만도 갖고 있으며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를 퍼붓거나 혹은 세상을 바꾸고자 분투하게도 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온갖 세속적인 욕망의 담지자로 인물들이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우리의 현실이 바로 그렇듯이). 또한 양페이가 됐든 누가 됐든 전체 서사를 이끄는 주인공이 하나로 설정되면 그가 이끄는 서사는 자연스럽게도 어떠한 지향(혹은 투쟁)과 그 결과(성공이든 실패든)라는 굴곡을 가지게 마련이고, 그 결과로 안일한 성공에 따른 통속적 이야기가 되거나 현실적인 패배에 따른 현실 비판적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작가가 처한 상황 때문에 후자가 회피된 것이 아니라면, <제7일>이 현재의 모습으로 되어 있는 데 대해서는 그 자체로 효과와 의의를 살려 주는 것이 온당한 일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현실에 대한 비판을 바탕에 깐 채 죽은 자들이 중음신의 상태에 머물고자 하는 이야기로 끝을 맺음으로써 비속한 현실에 대한 거부를 명확히 하는 한편,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느낄 수 있는) 수려한 문체와 서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소중한 인간관계의 아름다움을 아련하게 그리고 그만큼 깊이 있게 발휘하는 것이다. 죽은 자들을 내세우는 인물 구성상의 특징과 빼어난 묘사를 낳은 문체의 힘에 의해 마련되는 이 작품 특유의 정조에 의해, 부정성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소중한 인간적 가치를 전면화하면서 여운을 길게 함으로써 <제7일>이 자신의 생명과 특성을 확보한 점,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이 오늘의 우리에게 의미 있게 읽히게 해 주는 힘이자 우리로 하여금 시대 상황을 새삼 깊이 있게 돌아보게 해 주는 작품의 의의를 이룬다.

* 실로 오랜만에 모임에 참석한 저 자신에게 주는 작은 선물로 짧은 글 하나 써 봤습니다^^
smex36 뭔가 정리가 되는 느낌이에요. '빼어난 묘사를 낳은 문체의 힘에 의해 마련되는 이 작품 특유의 정조'. 이게 좋기도, 또 불만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서정적 소설,이라는 말은, 제 개인적으로는 형용모순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가령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나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 같은 소설이 그래요. 이 소설도 비교적 그 쪽으로 근사할 듯.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만, 저로서는 형제의 그 방약한 상상력,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뭔가 핍진한 그 문체가 더 좋았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뭐라고 해명할 수 없지만, 좋은 작품이다, 하지만 과연 좋은 소설일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소중한 인간적 가치'라는, 저도 동의하지만, 미심쩍은, 그래서 더 물어보고 싶은 대목은 여전히 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종종 올려주세요. ^^

15·04·03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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