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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가의 외로움: 김탁환의 [목격자들]
 bloom    | 2015·05·07 05:29 | HIT : 272 | VOTE : 39 |


1.
몇번 다른 글에서 적었지만, 한국 문학 공간에서 장르문학은 홀대받는다. 추리소설, 공포소설, 환상소설, 과학소설(SF), 그리고 역사 소설 등이 다 무시당한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문학사적, 문학사회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나는 그에 대해서 조리있는 설명을 할 능력이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이런 장르문학의 취약함이 소위 '본격문학'의 깊이와 넓이, 혹은 재미와 감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한국문학의 폭은 여전히 좁다.(이런 내 판단이 틀렸다면 다행이다)최근에 김영하나 정유정 등이 장르문학의 틀을 가져오면서 좋은 작품을 쓰고 있지만, 역시 그 양과 질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고 본다. 과문한 이의 판단이지만, 역사소설은 더욱 그런 편이다.  김훈이 쓴 역사소설들은 독보적이라고 할 만하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흑산]  등이 그렇다. 그래도 김훈은 그의 성취에 걸맞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운이 좋은 편이다. 대체로 장르문학의 작가들은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편이다. 그리고 수준을 논하기 이전에 일단 장르문학의 절대적인 층이 얇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절대적 양이 축적되어야 질적 전환이 일어나는 건 문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장르문학에 대한 비평적 무관심도 한몫 한다.

2.더욱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본격문학과 장르문학의 구분조차 의미없다. 좋은 작품은 그냥 좋은 작품이다. 예컨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그 자신도 인정했듯이, 챈들러 같은 장르문학의 틀을 가져온다. 그렇게 그는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무라카미의 주요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사건을 제기하고, 그 사건의 원인을 파헤치는 인물(들)의 궤적을 따라가는 미스테리 소설의 틀로 씌어진다. 과거에 어떤 일이 발생했다.  혹은 지금 다른 공간에서 어떤 일이 생긴다. 그 어떤 일이 지금의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왜 생겼는가?  이게 무라카미 작품의 기본 구조다. 이 구조를 세밀히 짜는 작가의 역량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진 어떤 일이 현재의 시공간과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병치적 구조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무라카미의 세계관은 평행우주론적이다.  내가 보기에 그의 대표작인 [해변의 카프카]나 [태엽갚는 새], [1Q84] 가 다 그렇다.  작품의 규모는 작지만 최근작인 [색채없는 다자키 스크루의...]도 그렇다. 이런 장르문학의 틀을 사용한다고 해서  무라카미 작품이 홀대받지는 않는다. 조심스러운 판단이지만, 여기에는 일본 장르문학의 두터운 토대와 역사가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나는 판단한다. 내 전공인 영문학, 미국문학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결국 창작에서는 어떤 형식과 내용도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결국 최종적 판단의 기준은 그 형식과 내용의 '수준'이다. 예컨대 움베르토 에코의 걸작 [장미의 이름]을 어떤 틀에 집어넣을 것인가. 그것은 장르문학인가, 아니면 본격문학인가. 생산적이지 못한 질문이다.

3. 장르문학이 홀대받는 분위기에서 홀대받는 작가들도 생긴다. 나는 그중 한명이 김탁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역사소설들, 특히 이른바 '백탑파'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을 뿐만 아니라, 단지 역사소설으로만이 아니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무거움과 진지함이 평가를 받는 한국문학계의 분위기에서 상대적으로 '재미'의 가치는 무시당해왔다.(물론 이들이 상호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좋은 작품은 진지하면서도 재미있는 작품이리라)  그 결과 한국문학은  '이야기하기(스토리텔링)'가 취약해졌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다면 읽는 수고에 값하는 새로운 인식의 생산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조차 별로다. 문학은 인식과 상관없고 감성하고만 관련된다고 믿는 작가가 있다면, 나는 그 인식의 나이브함에 냉소를 보낼 것이다. 문학은 감성의 산물이 아니다. 훌륭한 문학에서 재미와 감동(감성)과 새로운 인식의 생산은 함께 있다.

4. 요새 조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나도 관심이 많다. 내게 조선은 500년을 버틴 왕조다. 그렇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 통치시스템, 문화의 정신이 무엇인지 관심이 간다. 내가 아는 한 세계사적으로 볼 때도 단일 왕조로 수백년을 버틴 예는 많지 않다. 상세한 고찰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을 가능케한 조선의 정치 시스템이 관건이었으리라고 판단하다. 예컨대 통치자로서 왕을 교육하는 시스템을 다룬 책을 전에 읽으면서 깊은 인상을 받은 기억이 있다. 조선에서 왕은 철저히 왕으로서 길러지고 만들어졌다. 통치시스템의 힘이다.  현재 한국의 지배구조 시스템이 조선보다 나은지 의문이 들었다.(이점은 대중민주주의에서 지배구조의 문제와 관련된다. 대중민주주의의 딜레마이다)  
김탁환이 '백탑파' 시리즈에서 다루는 정조 시대는 조선의 통치시스템이 거대한 전환점에 처한 시기다. 계몽군주의 모델에 가장 가까운 왕으로 평가받는  정조의 죽음 이후에 조선왕조가 몰락의 길로 접어든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도 이 시대는 역사가만이 아니라 작가에게도 매력적이다. 극한적 인물과 극한적 사건을 통해 한 시대의 진실을 드러내는 소설 장르에서, 특히 어떤 시대와 인물을 택할 것인가는 중요하다. 그점에서도 정조 시대는 흥미롭다. 계몽군주로서 모순적 면모를 지녔던 정조라는 왕의 매력과 힘도 그렇지만, 그 시대에 활동했던 지식인들의 면모가 또한 주목을 끈다. 정조와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등 당대의 실학자들이 맺는 협조와 갈등(특히 문체반정을 둘러싼)은 당대의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인 울림이 있다. 특히 정치/권력과 지식인의 관계, 정치와 문학예술의 관계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5. 김탁환의 최근작 [목격자들]은 조선 시대에 실제 일어났던  조운선(국가에 바치는 세곡을 나르는 배)의 침몰을 둘러싼 음모를 파헤친다.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세곡을 직접 징수하는 말단 관원부터 조정의 최고권력층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들의 욕망과 세계관, 이해관계가 드러난다. 작가가 그런 집필의도를 밝히기는 했지만, 이 사건에 겹쳐지는 건 당연히 세월호 참사다. 각자가 인상깊게 읽은 부분이 다르겠지만, 나는 조운선 침몰 사건을 대하는 정조의 태도가 기억에 남는다. 왕의 말이다. "적절한 지적이다. 백성을 버리고 배에서 가장 먼저 내려 달아난다면, 그자가 어찌 군왕일 수 있겠는가. 백성을 무사히 구하지 못하면 배와 함께 가라앉겠다는 의지를 지니도록 노력하겠다." 물론 우리시대는 '계몽군주'가 가능한 시대는 아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도자의 역할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한편의 소설로서 아쉽게 느껴지는 점도 있다. 장르소설의 특성일수도 있지만, 억지로 '러브라인'을 만들었다는 인상을 주는 부분도 있으며, 세력관계를 이루는 다양한 인물들이 좀더 입체적으로 묘사되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특히 '악'의 면모가 좀더 강하게 제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6. 장르문학이 홀대받는 분위기에서 꿋꿋하게 자신이 택한 길을 걸어가는 작가를 만나는 것은 반갑다. 나는 많은 작가들이 그렇게 각자의 길을 소신껏 걸어가면서 고유한 세계를 만들어낼 때, 한국문학이라는 숲이 더 울창해지고 다양해지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소신은 단지 정신적인 각오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작품을 쓰기 위한 창작의 준비와 자료조사와 공부가 뒷받침될 때 결실을 맺는다고 믿는다.  이미 지나간 한 시대를 입체적으로 그리기 위해 작가에게 얼마나 많은 노력과 준비가 필요한지 독자로서 나는 짐작도 못할 뿐이지만, 그런 노력이 좋은 작품을 가능케 한다는 추측은 한다. 연구자나 비평가도 그렇지만, 작가도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걸 준비하고 공부해야 한다. 걸작은 영감의 산물이라는 낭만주의적 창작 신화를 나는 믿지 않는다. 좋은 작품은 영감에서 시작해서 많은 준비와 조사와 연구의 땀으로 생산된다고 믿는다. 소설로 쓰는 조선사를 필생의 목표로 삼은 김탁환 작가가 그 목표를 이루길 한 독자로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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